죽차, 죽림욕에 죽전설까지…'죽'이 맞는 대밭고을
지난해 1만5800명 방문 인기
봄 3만 ㎡ 대나무숲서 수액 채취
여름 무인도 탐험 프로그램 준비
가을 단감 밤 등 제철 과일 수확
겨울 허수아비 만들고 경운기 타기
경남 사천시 곤양면 상정리 비봉내체험마을의 대나무밭에서 탐방객들이 하늘을 떠받치듯 치솟은 대나무의 전설을 전문해설사로부터 듣고 있다.
도시에서 빠듯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농촌을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며 항상 그리워 한다. 시골에서 젊은 날을 보낸 어른들은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소를 먹이며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고 집으로 돌아올 때 쯤이면 풀피리를 만들어 불며 재잘대던 기억들을 쉽게 떠올린다.
또 들판을 마음껏 뛰어 다니며 대나무로 만든 물총으로 전쟁놀이를 했던 기억과 함께 때때로 서툰 농삿일을 거들었던 지난날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이 같은 농촌 풍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지정리로 반듯해진 논은 시골 맛을 찾아볼 수 없게 돼 버렸고 고령화된 농촌은 함께 추억을 만들 친구조차 사라진지 오래다.
경남 사천시 곤양면 상정리 비봉내마을은 그 같은 어린날의 추억들을 고스란히 되새김질해 볼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춘 곳이다.
부산에서 출발해 남해고속도로를 달려 곤양IC에 내리면 오른쪽으로 곤양면 소재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솔사 방향으로 차를 달려 채 1분도 걸리지 않아 면소재지의 끝자락에 닿는다.
여기가 비봉내체험마을 가운데 대나무와 관련된 체험을 할 수 있는 대밭고을이다. 입구에는 '대밭고을 입구'라는 허름한 입간판을 2개나 세워두고 있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비봉내체험마을을 처음 시작한 이곳은 촌장인 강태욱(41) 씨가 7명의 해설사와 함께 직접 꾸려가며 농촌에서 즐겼던 민속놀이와 농삿일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만여 ㎡의 대나무 밭에서 하늘을 가릴 정도로 치솟아 자라는 맹종죽 사이의 숲길을 걸으며 대나무의 특성과 종류 생태 등을 배우고 대나무에 얽힌 전설과 고사성어 등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또 1.4㎞의 대나무 사잇길에 들어서면 숲 해설사가 대나무에 대한 상식을 들려준다.
그리고 300여 m를 이동해서 땅 밖으로 드러난 대나무 뿌리를 만나면 대나무의 생육과 습성을 설명하다 넓직한 광장에 이르러서는 맹종죽의 전설을 들려주면서 가까운 대나무에 귀를 대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특히 가을로 접어드는 10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는 대나무잎으로 차를 만들기도 하는데 참가자들은 자신이 2~3번을 덖어 만든 댓잎차를 집으로 가져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때쯤에는 너도나도 댓잎차 만들기 체험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어른과는 달리 아이들은 대나무를 잘라 작은 구멍을 뚫고 반대쪽에 헝겊으로 만든 피스톤을 밀어 넣어 만든 물총으로 전쟁놀이를 체험하기도 하고 작은 두께의 대나무로 자신이 직접 만든 피리를 불기도 한다.
올해는 대나무숯굴 앞 빈터에 고운 황토로 흙 체험장을 만들어 도시의 아이들이 뒹굴며 흙장난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두고 있다.
이곳에서 150여 m 거리에는 10개의 방에 200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민박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용료는 1인 1박에 1만 원이다.
대밭고을에서 다솔사 쪽으로 700여 m를 더 가면 오른쪽으로 상정마을 표지석이 있는데 여기서 300여 m의 농로를 더 들어가면 도농교류센터라는 건물이 있는 상정마을에 닿는다.
모두 42가구 129명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마을이장과 주민들이 공동체를 조직해 체계적인 체험활동을 돕고 있다.
이장을 중심으로 하는 영농회에서는 딸기따기와 마늘뽑기 모심기 등의 농사체험을 담당하고 부녀회에서는 음식이나 간식을 제공하며 경로회에서는 보름날 달집짓기와 허수아비 만들기, 미꾸라지잡기 체험 등을 돕는다.
계절별로 보면 봄에는 죽순따기와 대나무 수액 채취, 매실따기, 고추장 된장담기를 하고 여름에는 옥수수나 고추를 따고 무인도를 탐험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두고 있다. 가을철에는 단감이나 배 밤 같은 과일을 수확하고 겨울에는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를 실컷 따먹거나 연 만들기, 갖가지 모양의 허수아비 만들기를 하고 경운기에 나눠타고 들판을 달려보기도 한다.
이곳 비봉내마을에는 지난해 1만5800명(하루 평균 42명)의 체험객이 다녀갔으며, 전국에서도 몇 안되는 성공한 체험마을로 꼽히고 있다. 그 비결은 운영진의 열려 있는 마인드와 함께 체험학습연구회 결성 등에 있다.
이 연구회는 비봉내체험마을 주변에 있는 도자기, 연 만들기, 녹차원, 한우농장, 토마토 하우스, 포도밭 등의 체험현장과 어린이집, 초등학교, 학원 등의 교육현장을 연계한 종합체험시스템이다.
지난해의 경우 대나무와 관련된 체험이나 허수아비만들기, 딸기따기, 댓잎차 만들기, 피리 만들기 등은 비봉내마을에서 추진했지만 곤명면 초량마을 주민들에게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는 도랑체험을 맡기고 서포면 다맥마을 어촌계와 함께 무인도 탐험을 벌였다.
또 곤양면 흥사마을 도청도예에서는 도자기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고 사천읍 정의리 민속연마을에서는 우리의 전통연을 만들고 날려 보도록 했다. 또 곤명면 초량마을에 있는 초량농원에서는 고사리나 매실을 수확하고 논에다 놓아 기르는 닭들이 낳은 유정란 줍기체험도 마련하고 있다.
비봉내체험마을을 이끌고 있는 촌장 강 씨는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어른들에게는 어릴 때의 추억을 되새겨 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며 "농촌체험마을을 단순히 북적이는 관광지로 만들 것이 아니라 자연을 자연답게 가꾸고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예약문의 촌장 강태욱(011-9321-4000), 이장 조현래(017-591-3552).
■ 더 둘러볼 만한 주위 명소
- 김동리·한용운 선생 머문 다솔사 사방으로 6m 뻗은 300살 비자나무
비봉내마을에서 곤명면 소재지 방향으로 3㎞ 정도 가다보면 왼쪽으로 다솔사(사진) 입구가 나온다. 신라 지증왕 12년(511년) 때 연기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다솔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안치된 적멸보궁을 갖고 있는 전통 사찰이다. 작가 김동리가 이곳에서 소설 등신불을 집필했고 만해 한용운 선생도 3년 동안 수도한 유서깊은 곳이다.
곤양면 흥사리에는 보물 614호로 지정된 사천매향비는 고려말 우왕 13년(1387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왜구의 침략으로 불안했던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미륵부처에게 기원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계곡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곳에다 소원을 비는 향을 묻고 그 위에 비석을 세운 것으로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곤양면 성내리 곤양면사무소 앞에는 천년기념물 제287호인 비자나무가 있다. 직경 2.4m에 가지가 사방으로 6m가량 뻗어나간 수령 300여 년의 노거수다. 이 나무는 곤양군이었던 조선시대 때 형방관아의 앞 뜰에 심어 놓았던 것으로 전해지는 데 한때 줄기 부분이 썩었다가 새 가지가 돋아나 지금은 키가 15m에 이른다.
■ 열혈 촌장 강태욱 씨 - "대나무 숯·수액 알리는 게 관건이었죠"
오늘의 비봉내체험마을이 있기까지 숨은 공로자인 촌장 강태욱(사진) 씨의 열정을 빼놓을 수는 없다. 지난 1999년 2월 고향인 이곳에서 땅부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농사일을 시작하려던 그는 15만 ㎡도 넘는 대나무밭에서 수액을 채취해 판매한다는 계획을 추진했다. 대나무수액은 고로쇠수액보다 무기질이나 알칼리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돼 있어 제대로 알리기만 하면 시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대나무 밑동을 잘라 수액을 채취하고 남은 대나무는 숯을 만들어 판매했는 데 대나무 수액과 숯을 구입하려는 고객들이 채취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하나 둘씩 대나무밭을 방문하면서 대나무를 제대로 알릴 기회를 갖게 됐다. 그는 체험장을 마련하고 농촌관광심화반 교육을 수료하는 등 농촌을 테마로 하는 체험교육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지난 2003년 전통테마마을로, 2007년에는 경남도로부터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농촌체험교육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마을주민들과 함께 허수아비 만들기나 물고기잡기 딸기따기 미꾸라지잡기 등을 프로그램에 포함시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입력: 2008.03.20 15:33 / 수정: 2008.03.2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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